[‘외국인노동자를 위한 겨울 외투 나눔’ 현장] “한국인의 정 담은 외투 덕분에 겨울 걱정 덜었네요”
중소기업·서울지역 학교 적극 참여 눈길
나눔으로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일보전진
“한국에 지난 10월에 도착했는데 더운 고향 날씨와 달리 너무 추워 놀랐다. 겨울옷을 사자니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워 고민이 많았는데 좋은 옷을 선물 받아 고맙다. 응원 받은 만큼 앞으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겠다.”
4일 서울 종로구 경희궁 잔디공원에서 열린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작은 축제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윙 으엔 워 티엔씨(26)의 말이다. 이날 행사는 서울지역 학생·학부모 그리고 시민들이 기부한 외투를 외국인노동자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자리였다.
◆”새옷 같은 겨울 외투, 한국인 정 느꼈어요” = ‘어서 와! 겨울은 처음이지’로 명명된 이날 행사에는 시민들이 기증한 3500벌의 외투가 전시됐다. 성별·사이즈별로 나뉜 구획에 일렬로 세워진 행거에 드라이클리닝 후 비닐외장재로 포장한 외투가 걸렸다. 행사를 찾은 외국인노동자들은 국적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마음에 드는 옷을 한 벌씩 골랐다. 이들은 수선과 세탁 과정을 거쳐 새 옷처럼 변신한 옷의 품질에 기쁨과 감사를 표했다. 네팔에서 온 식델라젠드라씨(24)는 “행사 장소나 옷의 상태가 우리를 존중하는 느낌이라 더 감사하다”면서 “옷을 선물해 준 많은 한국 국민들에게 고맙다고 꼭 전해달라”고 말했다.
또 이용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최영희 탁틴내일 이사장, 이옥경 내일신문 부사장은 기증한 자신의 외투를 직접 체류기간이 1년이 안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입혀주고, 직접 산타로 분해 포장을 도왔다. 특히 옷에 한 단어의 인사말 키워드를 붙여 눈길을 끌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을 비롯해 누구나 당연한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한 ‘평등’ ‘포용’ ‘나눔’ ‘동행’ 등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응원을 담은 것. 평등이라는 키워드를 붙인 이용득 의원은 “우리나라도 과거 독일이나 중동에 노동자를 많이 파견했고, 이분들이 오늘날 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돼주셨다. 상황이 뒤바뀌어 많은 외국인노동자가 우리나라에 온다. 법에는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돼 있지만 실제로 차별이 있는 만큼, 평등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복체험에서 금융상담까지 다채로운 행사 눈길 = 행사장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와 체험 부스도 마련됐다. 외국인노동자와 기부자 그리고 20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설치했다. 한체대 태권도 시범단과 부산중 치어리딩팀 등은 무대에서 흥겨운 볼거리를 선보였다. 행사장 곳곳에 설치한 한복체험 캘리크라피 손뜨개질 전통놀이 부스에서는 즐길거리가 제공됐다. 또 휴대전화와 금융 상담부스들은 영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스리랑카어 등 외국어 전담 인력을 배치해 생활 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금융 상담(하나은행)은 외국인노동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조미령 하나은행 외환마케팅부 대리는 “가까운 곳에 은행이 없는 근무지 특성상 인터넷을 활용해야 하는데 모국어 설명이 없어 공인인증서를 내려 받지 못하거나 은행마다 다른 어플리케이션과 설치 과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좋은 행사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건강상담도 이뤄졌다. 1997년부터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해 온 라파엘클리닉에서는 건강 상담을 제공했다. 오범조 서울 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조교수는 “장시간 육체노동에 따른 근육통과 먼지가 많은 작업환경으로 인한 알러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찾아왔다”면서 “약을 얻을 수 있는 처방전을 작성해주고, 무료 진료·처방을 하는 라파엘클리닉에 대한 안내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월급 대부분 송금, 외투 구입 부담 = 이번 행사는 내일신문, 탁틴내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힘을 모아 마련했다. 일상생활이나 다양한 매체에서 외국인과 외국문화를 접하지만 정작 함께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여전하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선의를 가진 작은 실천이 모아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다 겨울 외투에 주목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200만명을 넘었고, 이중 취업 비자를 받은 노동자는 100만명을 웃돈다.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출신지나 근무 직종이 다양해지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일부에 치중돼 있다.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권 노동자들이 80%로 대체로 국내인이 기피하는 공장 건설현장 농수축산업 등 격한 육체노동이 필요한 직군에 종사한다. 이들에게 언어와 문화만큼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겨울이다. 고향에선 평생 겪어보지 못한 혹한의 추위 때문이다. 월급의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거나 저축하는 만큼 난방이나 외투 구입비는 매우 부담스럽다. 이에 시민들의 옷장 속 묵은 옷을 떠올렸다. 여러 시민단체와 SNS를 통해 품질에 문제없지만 체격이 달라져 입지 못하게 됐거나, 취향이 바뀌어 안 입게 된 옷을 기증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일반인과 학생 봉사자들은 행사장 안내부터 간단한 영어 통역을 맡았고, 외국인 봉사자들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책임졌다. 다양한 체험·상담 부스 역시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재능 기부 형태로 참가했다. 특히 기증자와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학생과 학부모였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100여 중·고교는 외투를 모아 기증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편지를 전달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성장기 학생들에게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의미있는 나눔을 실천하게 했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의미가 컸다고 평가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의 행사장 안내를 도운 김소현 학생(신사중 2)은 “평상시 봉사 활동에 관심이 큰 데 학교에서 안내를 받고 참가하게 됐다”면서 “특히 의사 선생님들의 의료 봉사나 같은 외국인 노동자이면서 동료들의 통역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가진 나도 재능을 키워 나누고 싶다는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선재 학생(압구정고 2)은 “학교 공지를 보고 봉사에 참가했는데 나중에 의미 있는 행사가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기획쪽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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