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는 기쁨의 시간… 주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 라파엘클리닉 20주년 기념
2007년부터 라파엘클리닉서 봉사
차별받고 소외된 이주민 만나며 이주사목 위한 교회 역할 고민
10주년 맞은 라파엘인터내셔널서도 활동
몽골·에티오피아 등 찾아 의료 봉사
현지인 의료 역량 강화 위해 교육도
봉사 시간·비용 등 어려움 많지만
‘하느님 도구’로 부르심에 응답 다짐
발행일2017-06-04 [제3047호, 12면]
2007년부터 라파엘클리닉 진료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 진료에 나섰다. 또한 라파엘인터내셔널 활동을 하며 해외 의료소외지역 현지 의료진 역량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2011년 라파엘클리닉 해외봉사상, 2016년 서울대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현재 라파엘인터내셔널 이사를 맡고 있으며 국제보건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는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부센터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일시 : 2017년 5월 24일
우리 시대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더 가난한 이주노동자.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진료 활동 등으로 주님 사랑의 새로운 모습을 펼쳐온 라파엘클리닉(대표이사 안규리)이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또한 해외 의료 소외지역에까지 인술의 범위를 넓히며 생명 살리기에 앞장서 온 라파엘인터내셔널(이사장 김전)이 모습을 드러낸 지 꼭 10년이 됐다. 이를 기념해 라파엘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며 몽골, 네팔 등 해외 의료 소외 지역에서 봉사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김웅한(베네딕토·55·서울 여의도동본당) 교수를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만났다.
▲장병일 국장(이하 장 국장): 오랫동안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과 서울대 의대 가톨릭학생회 의료봉사단 단원으로 활동하셨고, 지금은 라파엘클리닉과 라파엘인터내셔널에서 나눔 활동을 펼쳐오고 계십니다. 이곳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웅한 교수(이하 김 교수): 사실, 라파엘클리닉이 생길 당시에 그 존재를 알았지만 바쁘고 힘들어서 참여를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라파엘클리닉에서 몽골 어린이 심장 수술을 의뢰하면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어린이는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타지 못할 정도로 심장 상태가 나쁜 아이였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이 아이의 수술과 회복이 잘 되면 하느님 부르심으로 알고 라파엘클리닉 활동을 열심히 해 보겠다”고 기도했는데 수술이 잘 되고 회복도 잘 됐습니다. 그때부터 라파엘클리닉 봉사에 열심히 참여하게 됐습니다.
▲장 국장: 라파엘에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김 교수: 몽골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 심장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회복 중에 아기에게 심정지가 3번 왔습니다. 심정지가 올 때마다 심폐 소생술을 했는데 중간에 심장박동이 돌아오면 아기가 웃었습니다. 세 번째 심폐 소생을 하고 살아났을 때 아기가 눈을 뜨고 웃었는데 그런 경우는 5000번 심장 수술을 하면서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하느님이 옆에 계시다는 걸 느꼈어요. 그 아이는 지금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장 국장: 소아심장 수술의 권위자이신 김교수님께선 기존의 해외 초청 수술방식에서 ‘현지인 의료진 역량강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모델을 창출하고 계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특히 몽골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몽골 활동의 의미를 설명 해 주십시오.
-김 교수: 몽골뿐 아니라 해외 의료 봉사의 가장 큰 의미는 현지 의료진 역량강화입니다. 라파엘은 현지에서 직접 수술을 실시합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수술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의료팀도 이런 현지 수술을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만 현지 여건이 너무 열악해 수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라파엘은 해냅니다. 게다가 수술이 복잡하고 어려운 중환자를 선정해 수술합니다. 그리고 살려냅니다. 그래서 몽골 의료진이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며 휴가를 내고 수술을 보러 오기도 합니다. 그 뒤 그들이 보고서를 썼는데 ‘몽골에서 현지 수술이 가능한 팀은 라파엘이 유일하다’고 했다는군요. 또, 수술을 받았던 한 어린이의 가정은 수술 전에는 치료비로 수입의 반 이상을 지출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부부싸움을 자주했는데, 수술 뒤 수입의 반을 저축하는 등 형편이 많이 나아졌고, 그 덕분인지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걸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단지 심장병 치료에만 그치지 않고 가정까지 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장 국장: 몽골에서의 심장 수술이 몸도 치유하고 그 사람이 속한 환경까지 치유하는 것 같습니다. 몽골 외에 다른 나라에서의 봉사 활동도 소개해 주십시오.
-김 교수: 3년째 에티오피아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나라니까 유럽에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아프리카 해외원조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에티오피아에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 가서 현지의 열악한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장 수술 병원이 있지만 유럽 의료진이 왔을 때만 수술을 하고 현지 의료인은 수술에 참여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에티오피아 활동을 시작했고 현지 의료진과 함께 처음 심장 수술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인구가 1억이 조금 안 되지만 심장 수술이 필요한 사람이 200~300만 명에 이릅니다. 현지 의료진 역량강화가 중요한 곳이지요.
▲장 국장: 이역만리 타국에서,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의 봉사 활동도 궁금합니다.
-김 교수: 2007년 라파엘클리닉이 경기도 동두천 진료소를 개소할 때 책임을 맡아 건국대 의대 학생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동두천은 가구, 피혁 공장 등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데 근로 환경이 열악하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해서 주일에 진료소를 열어도 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 그들 중 남미,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많은데 출신국을 보면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도 있습니다. 라파엘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의 손길이 거기까지 닿기는 아직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장 국장: 이주노동자가 우리나라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보십니까?
-김 교수: 그렇다고 봅니다. 흔히 말하는 3D 업종((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을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문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네팔에 갔을 때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분은 네팔에 돌아와서야 한국어에 존댓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반말이나 욕설만 들었던 것이죠.
▲장 국장: 이주민에게 행해지는 이런 차별과 관련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김 교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이야기하고 교회가 먼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접근해야 합니다. 정부에 그 부분을 요구하기는 어렵고 교회가 먼저 이주노동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부분에 좀 더 마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파엘클리닉이 현재 구상하고 있는 사업은 라파엘이 그동안 진료한 기록을 논문화해서 정리하는 것입니다. 현재 인력·예산 부족으로 생각만 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화 된다면 이주노동자의 건강 분야에서 어떤 질병이 문제가 되고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뤄진다면 라파엘의 자료가 이주민 건강 관련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장 국장: 라파엘클리닉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교수: 라파엘클리닉은 이주노동자 사목의 좋은 모범입니다.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먼저 다가가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지요.
▲장 국장: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 소아흉부외과 일도 무척 바쁘신 것 같은데, 봉사활동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으시죠.
-김 교수: 라파엘에서 하는 일은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사람과 돈을 모으는 일입니다. 해외에 갈 때마다 1주일씩 휴가를 내야 하는데 의료진이 휴가를 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 의료 봉사를 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는데 계속 기회가 생기고 어디선가 돈이 모이네요. 지금까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우고 의료인으로서 기쁨을 느낍니다. 또 좋은 분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신부님들이 함께해 주시고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님은 라파엘클리닉을 시작할 때 ‘라파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고 지금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장 국장: 봉사와 나눔의 삶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특히 신자 의료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펼쳐나가실 것인지.
-김 교수: 의대 재학 시절 가톨릭학생회에서 진료 봉사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는 서울 구로동에서 진료를 했는데 주말마다 진료를 나갔습니다. 그때 구로공단 상황을 보면서 일주일에 한 번 진료 봉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또 의사가 내 적성에 맞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해 보니 하느님은 저에게 심장 수술이라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을 때 하느님의 도구로 잘 쓰이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고, ‘외과의사로서 ‘수술’이라는 봉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진 하자’라는 단순한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불러주신 좋은 기회를 좀 더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수술하기 전에 기도를 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위로을 받고 힘이 솟아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