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이주노동자 잇는 사랑의 징검다리

 

▲ 라파엘 클리닉 의료 지원 코디네이터 홍은숙(오른쪽에서 두 번째)씨가 진료 예약 차트를 보며 이주노동자들에게 타 병원 진료를 안내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왜 하필이면, 이주민이었을까? 간호사 출신 보건교사라면 봉사할 데도 많았을 텐데, 홍은숙(비비안나, 54, 수원교구 분당요한본당)씨는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주일마다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 라파엘센터로 향한 지 벌써 3년째다.

지금도 보건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주일은 꼭 라파엘 클리닉에서 ‘의료 지원 코디네이터’로 이주민들과 함께한다. 가족여행이나 집안일, 가족들끼리 함께해야 하는 일은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까지로 바꿨다. 가족들도 으레 주일이면 홍씨가 봉사를 하러 가려니 한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게 된 건 해외 봉사가 계기가 됐어요. 보건교사로 있으면서 7년 동안 서울 초ㆍ중등 보건교과교육연구회 일원으로 여름방학 때면 몽골이나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보건교육 세미나를 했는데, 우연히 라파엘 클리닉에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오게 됐어요.”

하루 평균 320여 명이 찾는 라파엘 클리닉에서 그의 역할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어찌 보면 복잡하다. 환자 응대부터 시작해 ID카드 확인, 당일 진료 기록지 발행, 초ㆍ재진 진료 예약, 층별 진료소 안내, 약 배부 안내, 타 병원 의뢰와 법률지원팀 안내, 봉사자 교대 점검 등 진료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는 게 그의 일이다. 19개 진료과목별로 활동하는 코디네이터들이 의약품이나 물품을 제대로 갖추도록 돕고 봉사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정하고 조정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의료진과 이주노동자를 잇는 ‘징검다리’이자 이주민들의 ‘안내자’다.

1층에서 5층까지 수시로 오르내리다 보면 무릎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봉사가 주는 기쁨이 더 크다. 특히 우왕좌왕하다가 진료를 받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거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진료와 관련된 지시를 엉뚱하게 이해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돕게 될 때 보람이 크다. 의사소통이 안 될 때면, 한국말을 잘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몸짓이나 표정으로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봉사의 기쁨을 알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딸에게도 봉사를 권유했다.

그는 “병고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이 진료를 받고 나서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갈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며 “봉사를 통해 주는 것보다 오히려 받는 게 더 많기에 감사할 뿐”이라고 봉사 소감을 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