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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2009년 7월호에 실린 안규리 선생님 관련 글입니다.
안규리 선생님은 라파엘클리닉 상임이사이시고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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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를 돌보는 라파엘클리닉의 안규리 박사>

한국의 슈바이처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요즘 들어 기자가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되도록이면 선입견을 갖지 말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으로서 정직하고 올바른 보도에 힘씀은 물론, 다른 매체의 보도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라파엘클리닉(Raphael Clinic) 상임이사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인 안규리(소화 데레사, 서울 성북동 본당 신자) 박사를 만났다. 한때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많은 주목을 받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라파엘클리닉에서 만난 그는 비난의 중심에 섰던 사람답지 않게 매우 인간적이고 헌신적이며 신앙심 깊은 의사였다.
그는 이주 노동자 무료 진료소인 라파엘 클리닉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1997년 4월 현재 라파엘클리닉 지도 신부인 고찬근(루카) 신부 주선으로 혜화동 성당에서, 서울대 의과대학 가톨릭 교수회와 학생회가 ‘클리닉 카사’(Clinic CaSA)라는 이름으로 첫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 후 강우일 주교가 치유의 대천사 이름을 따서 붙여준 ‘라파엘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매 주일 오후 2~7시 동성고등학교 4층 강당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국내 의료 상황이 매우 열악할 때 빈민 진료 봉사를 했던 안 박사와 이들은, 국민의료보험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양로원에서 노인들 수발 봉사를 하였고, 기회가 되어 이주 노동자 진료를 하게 되었단다.
“1996년 가톨릭 교수회 일을 돕고 있을 때였습니다. 인권위원회로부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파키스탄 노동자 두 사람의 편지를 받았는데 예감이 이상하다고 하셨다며, 한번 가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브로커를 따라 서울 이태원에 갔다가 사건 현장에 있게 되었고, 입국한 지 얼마 안 돼 우리말을 몰라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3심을 기다리는 중에 광주 교도소에서 추기경님께 편지를 쓴 것이지요. 결국 무죄 판명을 받아 한국에 온 지 7년 반 만에 자녀 옷 한 벌 사들고 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참으로 마음 아팠지요.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22만 명이나 있는데, 대부분 불법 체류자고 임금 체불로 의료 혜택조차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비 50만 원을 털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 뒤, 과거 빈민 진료 때 사용하던 낡은 궤짝 두 개에 약제와 물품, 간단한 진료 도구를 넣고 진료가 있는 날 리어카에 싣고 다녔지요. 마침 대한적십자사에서 매월 200만 원 정도의 자금이 있는데 의사가 없어 진료를 못한다고 해서 서로 도움을 받았어요.”
첫 진료 때 30여 명이던 환자들이 점점 몰려 장소가 비좁아지자, 두 달 후 김 추기경과 강우일 주교 도움으로 금녀의 집인 가톨릭대학교 성신관에서 진료하게 되었다. 1년 뒤에는 강 주교와 당시 동성고등학교 교장 김운회 신부(현 보좌 주교) 도움으로 동성고등학교 4층 강당을 사용하게 되어, 지금은 19개 과를 진료하는 준 종합병원으로 성장하였다.

부족할 때마다 늘 채워 주시는 하느님

안 박사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진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무료 진료소지만 최선의 진료를 하고, 후배들과 같이하자는 것이었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진료 수준을 높여 환자가 원하는 진료에 접근할 수 있는가 노력 중이고, 학생 때부터 진료 봉사를 하던 이들이 의사가 된 지금도 함께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와 고려대가 격주로 진료를 맡고 있고, 연세대․건국대․적십자간호대․이화여대에서 진료를 도와주고 있다. 동문 선배들이 진료 기계를 기증해 주었고, 가톨릭 약사회가 약 공급을, 녹십자와 인하대 병원 원장도 도움을 주고 있다. 트랜스퍼(transfer) 제도를 통해 이곳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은 50여 개 동문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한다. 검사가 안 되는 것은 성균관대 병원에서 무료로 검사를 받도록 지원받는단다. 의정부와 동두천에도 진료소를 열었으며, 1년에 4번 이동 진료를 나가고, 몽골에는 ‘의료 캠프’를 열었다. 이 모든 것이 김 추기경, 강 주교, 김 전 라파엘 클리닉 소장, 동문, 타 의과대학 교수, 가톨릭 학생회 회원, 봉사자, 후원자들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그는, 고찬근 신부에게 특히 감사를 전했다. 가톨릭 교수회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고 신부와는 ‘이도행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을 돕다가 친해졌는데, 라파엘 클리닉이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1997년 IMF 때 진료소에 비치해 둔 초코파이가 동이 난 것을 보고 구호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하느님께서 부족할 때마다 늘 채워주시는 기적을 체험한다.
“환자들 먹을 것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이 되어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어요. 많이 힘들어서 원주 지학순 주교님 묘를 찾아가 뵙고 왔는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제2회 지학순 주교 기념 정의평화상’을 수상하게 됐어요. 그때 받은 상금으로 쌀과 구호 식량을 구입했고, 부족한 것은 고 신부님과 성당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받았지요. 김남호 재단(이사장 : 장 익 주교)과 여러 단체에서 후원해 주어 필요한 빵, 약은 물론 봉사자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났어요. ‘네가 마더 데레사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마더 데레사 수녀님 10분의 1쯤 되는 사람들 열 명만 모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봉사자들이 600명이나 되니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사람이야말로 ‘참 소중한’ 존재

과학자 집안에서 자라 종교가 없던 안 박사는, 혜화유치원을 다니면서 성당의 아름다움에 빠져 어른이 되면 꼭 세례를 받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중1 때 혜화동 본당에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하였다. 부친께 허락을 받았다고 성당에 거짓말을 하고 가족 몰래 세례 받을 정도로 의지가 굳은 그에게, 하느님과 교회 전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그러기에 어른이 된 뒤 종교 갖기를 어려워하는 의대생들을 보면 안타까웠는데, 카사처럼 신앙 동아리가 있어 그들이 하느님을 알고 의술을 펼칠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한다.
“제가 의사가 된 것은 건강이 좋지 않던 모친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의사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면역학 공부를 하려면 신장을 제일 먼저 공부해야 해요. 그래서 신장 전문의가 되었죠. 세포들이 성장하고 활동하는 것이 저한테는 판타지였어요. 신기했죠. 미국에서 신장 면역을 공부한 뒤 귀국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병의 치료를 준비하는 ‘바이오 메디컬 테크놀로지’를 위해 과학자들 연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오해도 많이 받고 비난도 샀지요.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건 말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찾아가 만난 사람들은 권력자 빌라도도 아니었고, 유명인들도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 바로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가셨지요. 그 사건으로 정직을 당하고, 인도의 한 시설 병원에서 진료를 했는데 제 아픔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산모들이 땅바닥에 누워 뒹굴고 환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논문 표절 논란이나 난자 매매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이 우선순위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오해 속에서도 여전히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겠지요.”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더 좋아졌다는 안 박사. 라파엘 클리닉을 통해 진료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일생일대의 행복이요 축복이라며, 사람이야말로 참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 사람처럼 매혹적이고 아름답고 다이내믹한 존재는 없다며, 하느님이 천사나 성인을 만들지 않고 왜 부족한 인간을 만드셨나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 하느님이 사랑에 빠진 대상은 바로 우리 인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기에 이곳에서 봉사하는 젊은이들이,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세상을 살지만 어려움을 잘 이겨내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또한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돌아가 본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단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어 라파엘 클리닉이 없어질 때까지 진료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는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배들이 여러 아시아권 나라에 나가 의료 사업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또한 서울대 장기 센터장으로서, 장기는 공공의 소유기에 물밑 거래나 매매는 안 된다며, 장기 기증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어 공평하게 나누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단다.

안 박사는 라파엘클리닉이 비록 지금은 진료 장소도 마땅치 않고, 세를 얻어 나간 치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언젠가는 좀 더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진료소를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환자와 의사, 봉사자들이 안심하고 편하게 치료받고 진료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 소중한 당신' 2009.7  발췌 | 취재∙정리 김선여 | 사진 최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