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의 수호천사 '라파엘클리닉' 설립 10돌
(기사원문)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704/h2007041519464121950.htm
“초기 시설 열악… 미용실 의자가 치과 의자”
안규리 교수 등 사재 털어 청진기 몇개로 시작
각계 후원 늘며 17개과 종합병원 규모로 성장
9만명 무료 진료… “동남아·北서도 활동 계획”
15일 오후2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 정문. 진료 번호표를 받기 위해 300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길게 줄을 선 채 자리를 지켰다. 의료 봉사단체인 사회복지법인 라파엘클리닉에서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서다. 진료실은 동성고 대강당 4층이지만 줄은 정문까지 100m넘게 이어졌다.
라파엘클리닉은 종합병원 병동을 방불케 했다. 100평이 넘는 공간 곳곳에 17개 과 진료실이 빼곡히 자리 잡았고 30여명의 전문의들과 100여명의 의료 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휴일마다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임금체불 상담 등 인권보호에 앞장서온 라파엘클리닉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라파엘클리닉은 1997년 4월13일 서울대 의대 가톨릭 교수회와 학생회가 중심이 돼 만든 외국인 노동자 진료 및 구호센터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6시30분 350여명의 외국인 환자를 치료한다.
10년 동안 혜택을 본 외국인 노동자는 9만여명에 달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약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외국인 노동자들과 신분이 노출될까 봐 병원에 가지 못하는 불법 체류자들에게 이곳은 ‘의료 성당’으로 불린다. 라파엘은 치유(治癒)의 천사를 뜻한다. 중국동포 고명금(58)씨는 “중국에서 가져 온 당뇨약이 떨어졌는데 치료와 함께 약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의사 선생님들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라파엘클리닉은 안규리 서울대 의대교수의 제안이 기폭제가 돼 탄생했다. 의료봉사 단체인 가톨릭 학생회 총무였던 안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의료 환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료 진료센터를 열기로 결심했다. 김전 라파엘클리닉 소장(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과 고찬근 신부도 힘을 보탰다.
출발은 미약했다. 안 교수는 동료 교수와 학생들의 도움을 받고 자비 50만원을 털어 첫 진료를 시작했다. 고 신부의 주선으로 혜화동 성당 구내 백관동을 빌려 연 진료소는 환자들로 넘쳤다. 두 달 뒤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도움을 얻어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성신교정이 리모델링 되면서 1년 만에 다시 지금의 동성고로 옮기며 성장을 거듭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의 의대생들이 동참하고 사회각계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청진기 몇 개로 시작한 라파엘클리닉은 10년 만에 종합병원 못 지 않은 조직을 갖추게 됐다.
사연과 곡절도 많았다. 김 소장은 IMF사태 당시를 또렷이 기억한다. IMF의 찬바람이 닥치자 갑자기 산부인과가 크게 붐볐다. 아이를 가졌지만 직장을 잃은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몰렸다. 김 소장은 “당시 라파엘클리닉은 출산 관련 의료기구가 없어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에 부탁해 산모들을 구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성모병원은 물론 물밑에서 도와 준 이름 모를 의사들과 독지가들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보금자리였던 성신교정은 당시 금녀(禁女)의 땅이었다. 때문에 여자 의사들은 일요일 진료 때마다 사제들의 감시 속에서 진료소까지 가 긴장 속에 환자들을 치료했다. 치과 진료를 위해 동네 미장원 의자를 기증 받은 적도 있다.
김 소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우리 국민이 누리는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동남아시아와 북한 등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실제 라파엘클리닉 관계자들은 지난해 동남아를 방문, 현지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의료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절감한 후 국외 활동에도 나서기로 했다. 라파엘클리닉은 이미 라파엘 인터내셔널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고 신부는 “라파엘클리닉의 활동을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대한 참회의 봉사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