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우리는 듣지 못한다. 진료비가 혹은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없어 아파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말이다.

“우리에게도 병원문을 열어주세요”

누군가가 감기에 걸리면, 인근에 있는 의원에 가서 간단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는 것이 가장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이러한 ‘평범'한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들에게는 의료보험이란 것이 없어, 한번 진료와 약 조제시 몇 만원씩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그들로서는 커다란 금전적 손실이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여의치 않다. 많은 경우 근무시간이 지나야만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시간에는 이미 대부분의 병원이 문을 닫은 상태다.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그들이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더욱 커진다. 의료보험이 없는 그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너무나 높기만 한 것이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 체류하기 시작한 지 이미 10여 년이 지났다. 몇몇 뜻 있는 단체들 혹은 의사들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하나 둘씩 무료진료소를 개설·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수년 전. 지금은 서울 및 수도권지역에서 약 10여 개의 무료진료소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한 두개의 진료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소규모이면서 상담소의 역할까지 겸하는 곳이 많아, 경미한 증상 이상을 진료하는 것은 힘든 실정이다. 간단한 진료로 해결할 수 없는 중증 환자들은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거나, 아는 의사들을 수소문하여 단발적 ‘원조'를 부탁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들에겐 유일한 안식처

대부분의 무료진료소들은 매주 혹은 격주 주말에 상담소 혹은 인근 교회 등을 빌려 무료진료소를 설치하고,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하며 그들의 문제를 상담해 준다.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병원으로의 연계도 도와준다.

3년 전부터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안산의 한 외국인상담소에서는 7명의 의사들이 번갈아 가며 매주 무료진료를 하고 있는데, 한번에 20∼30여명의 환자들이 찾는다. 후속 진료가 필요한 경우는 각각의 의사들이 자신들의 병원 혹은 인맥을 통해 다른 병원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나 응급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이런 무료진료소에서 맡기 어렵다. 환자들은 일단 상담소를 찾아오고, 상담원이 직접 환자를 데리고 ‘잘 아는' 병원으로 동행하는 절차를 밟는다.

안산 갈릴레아의 김현숙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파도 꾹 참고 있다가 주말에 열리는 무료진료소를 이용한다”며, “최근에는 공단 주변에 밤늦게까지 열리는 진료소가 생기고, 도움을 주는 의사들이 점차 늘어 평일에 급한 환자가 생기더라도 큰 고생을 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의료환경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은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지고 있지만, 주로 무료진료소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은 장비의 부족이나 후속진료의 어려움, 치료비 등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부천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집 관계자는 “일년에 몇 차례에 걸쳐 무료진료를 해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며, “다행히 올해부터 부천시와 보건소 측에서 적극적인 원조를 해주기로 하여, 현재 협의중인 장소 문제만 해결된다면 곧 무료진료소가 꾸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차원에서 원조가 된다면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도 기대할 수 있고, 최소한 아파도 치료를 못 받는 안타까운 사연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무료진료소의 한계

사실상 외국인노동자들의 유일한 1차 의료기관인 무료진료소. 도움을 주는 이들은 많아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무료진료소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극복될 수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한계는 외국인노동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점점 이용하는 환자들은 많아지는 데 비해, 그 숫자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무료진료소를 통해 발견된 중증 환자의 경우 다른 병원으로의 연계를 통해 후속 치료를 실시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해결하고는 있지만, 많은 경우 그 비용 부담이 쉽지 않을뿐더러 종합병원급 이상의 병원에 가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병원 물색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몇 의사들은 아주 사정이 딱한 처지의 외국인노동자의 경우에는 다른 한국인의 의료보험증을 빌려서(‘불법'이며, ‘부당청구'이다!) 진료를 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의사도 큰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운영중인 라파엘클리닉 무료진료소에서도 “중증환자의 경우 개인 당 최대 20여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으나, 그 돈은 치료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며, “비용과 협력병원 연계는 계속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의 김미선 사무국장은 “최근 의료공제회와 연계를 원하는 무료진료소들이 늘고 있다”면서, “무료진료소들과 의료공제회가 연계된다면 지역간 상호 의사소통도 가능할 것이며, 또한 무료진료소들과 2차 진료가 가능한 병원들이 협력한다면 환자와 진료소 모두의 부담이 적어질 것”이고 말해 상호 연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국 의료공제회의 협력병원 증가와 의사의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 봉사를 넘어 ‘시스템’ 만들어야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로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라파엘클리닉의 경우,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이런 저런 홍보를 통해 이루어진 성과다. 그러나 이곳 역시 자신들의 한계점을 느끼고 '의료공제회'와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일차적이고 일회적인 도움보다는 실질적인 의료혜택을 줄 수 있는 체계적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4,700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의원 2만여 곳을 비롯, 종합병원만도 수백 곳에 달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다. 그러나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일요일에만 이용할 수 있는 불과 10여 개의 무료진료소가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는 없다. 정부는 무관심하고 그들을 고용한 사업주들도 외면하고 있는 그들에게, 의료공제회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것이다. 더 많은 의사들이 의료공제회나 무료진료소 등에 협력병원으로 가입한다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걸음은 훨씬 더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청년의사]
남소희 기자 elfin@fromdoctor.com
사진 김선경 기자 potopia@fromdoctor.com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2-26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