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년 세월을 남몰래 이주노동자 20여만명의 아픔을 보듬어온 단체가 있다. 소외받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자는 모토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 ‘라파엘클리닉’이 그 주인공. 라파엘클리닉은 국내환자가 아닌 이주노동자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왜 이주노동자였을까? 라파엘클리닉이 설립된 1997년 국내에 약 30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기본의료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고 김수환 추기경의 지지로 서울대 가톨릭교수회·의과대학 가톨릭학생회가 주축이 돼 무료진료소를 개설한 것.
첫 진료소는 혜화동 성당에 개설됐다.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첫 진료 시 30명을 밑돌던 환자가 두 달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렇게 개설 첫해에만 3082명의 이주노동자가 라파엘클리닉을 찾았다. 라파엘클리닉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 가뭄의 단비였다.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라파엘클리닉을 찾는 발걸음은 매년 늘었다. 지난해에는 무려 1만6917명이 찾았다.
이주노동자의 발길만큼 라파엘클리닉도 성장했다. 초기 성당 복도에 막 하나가 전부였던 간이진료소에서 17년 만에 독립공간이 마련됐다. 서울대교구가 건물을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배려했고 후원자들이 각종 의료장비와 물품을 지원했다. 그렇게 1년여의 준비 끝에 17개과 진료실과 검사실을 갖출 수 있었다. 라파엘클리닉 안규리 대표(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협소했던 진료공간이 훨씬 넓어지고 각 과마다 공간을 분리해 혼잡을 해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라파엘클리닉에는 150명의 의료진과 3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팀을 나눠 의료봉사에 나서고 있다. 가장 면적이 넓은 지하 1층에는 내과, 정신의학과, 가정의학과가 있다. 1층에는 접수와 약제실, 2층에는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 8개 진료과가 배치됐다. 3층에서는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치과를 운영 중이다. 4층에는 사무국, 5층에는 강당을 둬 미사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그간 다양한 국가의 이주노동자들이 라파엘클리닉을 찾았다. 총 75개국에서 도움을 받았고 필리핀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이처럼 지난 20년간 라파엘클리닉이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을 돌볼 수 있었던 것은 봉사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라파엘클리닉은 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다양한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역할을 이주노동자 진료에 국한하지 않고 봉사자, 지역민이 함께 하는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안규리 대표는 “라파엘클리닉은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자 모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라파엘클리닉은 이동진료를 통해 다문화가족, 탈북주민의 건강까지 보살피고 있다. 후원문의는 라파엘클리닉 사무국(02-763-7595)으로 하면 된다.
2015.12.09 | 헬스경향 황인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