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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s1 박철중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1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은 진료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진료표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4층 강당에서부터 1층까지 이어졌다. 못해도 100여명은 돼 보이는 이 줄에는 피부색도, 차림새도 가지각색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들 사이를 의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돌아다니며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어 마치 야전병원 분위기가 느껴졌다.

매주 일요일 동성고 강당에서는 의료 봉사단체인 사회복지법인 라파엘 클리닉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무료 진료소를 연다.

라파엘 클리닉은 1997년 4월13일 서울대 의대 가톨릭 교수회와 학생회가 중심이 돼 만든 외국인 노동자 진료 및 구호센터다. 현재는 매주 20~30명의 의사들과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진료를 해주고 있으며 이들이 치료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매년 1만 2000명에 달한다. 라파엘 클리닉은 고 김수환추기경이 관심을 많이 기울였던 활동이고 지금도 곳곳에 추기경의 유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약값이 없어서 혹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 탄로날까봐 병원도 못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곳을 ‘의료 성당’이라고 부른다.

네팔에서 온지 1년째인 카렐씨(46)는 “당뇨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 벌써 다섯번이 넘는다”며 “무료로 진료도 해주고 약도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2]

중국 동포 손계영씨(49)도 몸이 아플 때 마다 이곳을 찾는다. 한국에 온지 5년째라는 손씨는 가사도우미와 식당일을 병행하면서 고혈압을 얻었다.[사진1]

손씨는 처음에 이곳을 방문할 때 정말 무료로 진료를 해줄까 반신반의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무료라는 것을 체험하고 나서는 항상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손씨는 “중국에서도 이렇게 대우받지 못하는데 여기는 의사선생님이 정말 친절하다”며 “여기서 약을 처방받고 병이 많이 나았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나와서 기다리는게 힘들지는 않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아무일도 아니다”라며 “진료소가 운영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라파엘 클리닉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휴일도 반납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뜻있는 의사들에게서 나온다.

라파엘 클리닉 진료소장을 맡고 있는 고재성 소아과의사는 1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사진3]

’13년째 주말을 이렇게 보내면 가족이 싫어하겠다’는 질문에 고 소장은 손사래를 쳤다. 고 소장은 “이 일을 하는 것을 아내가 더 좋아한다”며 “요즘은 진료를 나올 때 초등학생인 두 아들도 데리고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 진다”며 “봉사도 하고 교육도 시키고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냐’는 물음에 고 소장은 몽골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몇해전 몽골에 자원봉사를 갔을 때 일입니다. 한살인 꼬마 아이가 선천성심장병을 앓고 있었어요. 몽골에서 치료가 불가능 해 서울까지 데리고 와 수술을 했습니다. 다행이 수술은 잘됐고 지금은 몽골에 돌아가 벌써 5세가 됐습니다. 매년 사진을 보내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정말 행복합니다”

고 소장은 내년에 몽골로 자원봉사를 가면 이 아이를 꼭 다시 만나러 갈 것이라고 했다. 라파엘 클리닉은 이곳에 진료받으러 오는 노동자들의 출신국을 직접 찾아가 의료봉사를 하고 해당국 의사들을 한국에 불러 연수를 시키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꿈꾸고 있다.

이 곳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은 의사뿐만이 아니다. 2년째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유세리씨(27)는 건국대 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유씨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어떤 의사가 돼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며 “이 곳에서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며 “나중에 의사가 되더라도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했다.

라파엘 클리닉은 그럼에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정식 진료소가 아닌 학교 강당에서 진료를 이어가는 실정이며 의료기기와 약품도 많이 모자라는 상태다.

고재성 소장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의료권은 생명권과 마찬가지”라며 “이들은 아프면 직장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고 소장은 “좀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외국인노동자를 진료하는 것이 라파엘 클리닉의 꿈”이라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아직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