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님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초가을 유난히 하늘이 청명하던 일요일, 한적한 혜화동 골목 한켠 유독 한 건물이 외국인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봉사자들로 북적였다.
1997년부터 20년간 한주도 빠짐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와 투약이 진행되고 있는 이주 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 하얀 가운을 입은 여약사들도 있었다.
숙명여대 약대 개국동문회(회장 장은숙)는 올해 3월부터 라파엘클리닉과 협력을 맺고 참여 약사들이 순번을 정해 매주 일요일 투약, 상담 봉사에 나서고 있다. 2012년 13대 윤복순 회장 임기 때 거여동 소재 정동봉사센터 무료진료소에서 투약 봉사를 시작한 것부터 따져 올해로 5년째다.
처음에는 동문회 임원 위주로 운영됐던 게 최근에는 일반 동문들까지 자원하면서 참여 약사가 30여명으로 늘었다. 동문회는 소외 이웃 무료진료소인 요셉의원까지 2곳의 투약 봉사를 진행 중이다.
약사들이 봉사하는 라파엘클리닉은 75개국 23만 명, 연간 1만 8000여 명에 달하는 외국이 노동자들에 무료 진료를 받은 곳으로, 그간 의료진 150여명을 포함한 자원봉사자 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매주 350여명의 환자가 진료소를 찾고 있다.
이전 약사의 투약 봉사는 비정기적으로 운영돼 왔다. 자발적으로 나선 약사가 일시적으로 봉사하고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부터 동문회가 봉사에 나서며 정기 투약 봉사가 진행될 수 있게 됐다.
라파엘클리닉 이민경 약품관리 팀장은 “100% 후원과 봉사로 이뤄지는 기관이다보니 운영이 쉽지 않은 부분도 있고, 이전에는 특히 투약 부분이 꾸준하지 않아 걱정됐었다”며 “이번 동문회 약사님들이 선뜻 도와주시겠다고 하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매주 열리는 무료 진료소에서 앳된 얼굴을 한 학생들이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선배 약사들의 지시대로 약을 조제하고 있었다.
연합봉사동아리 커뮤너스 소속 약대생들이다. 가천대와 가톨릭대, 연세대, 한양대, 아주대 약대생들은 매주 순번을 정해 참여하고 있다.
가톨릭대 약대 전민정 양은 “신입생이다보니 올해 처음 봉사에 참여하게 됐는데 지난 6개월 간 느낀게 많다”면서 “투약봉사 자체도 의미있지만 무엇보다 약사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 함께 봉사나온 선배들은 실습 때보다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토요일까지 약국에서 근무하고, 가정까지 돌봐야 하는 여약사들이 그나마 하루 쉬는 일요일을 반납하기란 쉽지 않을 법도 한데 그들은 그 어떤 활동보다 뿌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유경 부회장은 “선후배들과 이렇게 뜻을 모아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기분좋고 감사해 하는 환자들을 보면 너무 뿌듯하다”면서 “여기 모인 의료진이나 약사, 학생들까지 다른 목적없이 봉사란 마음 하나로 뭉쳐 더 뜻깊은 것 같다”고 했다.
숙명약대 개국동문회는 ‘8월의 크리스마스’란 이름으로 매년 8월 어려운 이웃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후원금이 연말에 몰려 비교적 지원금이 적은 8월 사회 단체를 돕자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사회 후원 활동이다.
이날 동문회는 라파엘클리닉 측에 올해 8월의 크리스마스 후원금 1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장은숙 회장은 “송유경 부회장과 박영미 사회참여이사가 봉사 장소를 물색하던 중 뜻이 잘맞아 2곳이 선정됐고, 6개월째 선후배 약사들이 함께 해줘 고마운 마음”이라며 “개국약사가 약국 문을 닫고 봉사한다는 게 쉽지않아 임원들도 의무감으로 시작한 봉사지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을 느끼고, 동문들 자발적인 참여로 힘을 얻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더 많은 홍보와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