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the Raphael Angel

[인터뷰]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 라파엘과의 동행 20년' - 김경자 약사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22-07-07 10:06
조회
1285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 라파엘과의 동행 20


김경자 (약사,라파엘클리닉 약국 봉사자)


2p김경자약사 누끼변경사진

어느덧 라파엘클리닉에서 봉사한 지도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는 나이 60을 넘기면서 평생 해온 약사일과 틈틈이 했던 편집관련 일에서 조금씩 손을 떼었고, 동시에 사회와 이웃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라파엘클리닉과 인연이 닿았고, 2002년 드디어 라파엘클리닉 약제부에서 자원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개소 5년 차의 클리닉 진료환경은 몹시 열악하여 진료는 동성고 3층 강당 복도에서, 약제부는 비상계단의 자투리 공간에서 조제했습니다. 마치 시골 5일장 같은 분위기였지요. 매년 닥치는 혹서와 혹한을 견디면서 그렇게 봉사는 진행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이 진료 대상이었기에 봉사자들은 매주 일요일은 개인 일정을 희생해가며 그날 하루를 온전히 라파엘클리닉에 반납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봉사자들은 뜻있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으로,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격려했고, 소외받고 고통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쁨으로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저는 몰두했던 제약사 근무와 약국 경영에서 은퇴를 선언했기에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아쉽고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봉사는 그런 제 마음에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평생 익히고 쌓은 약사의 전문지식을 통해 봉사와 나눔이라는 가치를 실현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라파엘클리닉과의 동행은 사회와 이웃을 향해 그동안 내가 몰랐던 새로운 지식과 안목을 열어 주었습니다.

클리닉을 방문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낯선 타국에서 힘들게 버티며 살아갑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이들은 평균 10여 종류 이상의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하는 만성 질환자들입니다. 매 주 이들의 처방전을 접하고 조제하면서 처방전에 담긴 이분들의 고된 삶도 읽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처롭고 먹먹했습니다. 제가 이분들을 도와 드리는 길은 좀 더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 정확한 조제를 하는 것이라고 다짐을 하면서 부디 이분들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간절히 기도했고 기원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라파엘클리닉의 단골 환자가 되어 계속 찾아올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하면서 제가 미처 몰랐던 주위의 환경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이 따뜻해졌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감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인생의 소중한 보물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봉사의 선물입니다.

봉사자들은 명절, 연휴, 시험 기간 등 저마다의 손해를 감수하고 참여하기 힘든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봉사했습니다. 저 역시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가볍고 기쁘고 평온했다.

봉사란 ‘국가나 사회, 이웃, 타인의 복지를 위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힘을 바쳐 애쓰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볼 때, 저의 봉사는 지극히 소박합니다. 월 2,3회, 하루 6시간, 2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정성과 인내를 담아 라파엘클리닉과 함께 봉사와 나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시간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아낌없는 응원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별한 축복이었죠.

새봄이면 라파엘클리닉의 치료와 치유에 동고동락한지 20년입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누구도 피해가지 못하는 노년의 한가운데 70대 후반에 저는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활기차고 기쁘게 보람으로 봉사했던 그때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라파엘클리닉의 봉사자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아직 쓸모가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씩 퇴보하는 한계도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축복을 누릴 수 있을지는 하늘에 계신 그분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압니다. 라파엘클리닉이 제 삶에 준 선물들 봉사, 나눔, 감사, 사랑, 보람…….이 귀한 가치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산다는 사실을요.

‘봉사자들의 삶 자체가 정성스러운 기도‘라는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의 말씀을 담아 저를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준 라파엘클리닉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