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인터뷰]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6-11 16:29
조회
3163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 신부님, 반갑습니다.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춥게 지냅니다. (하하) 빈민사목위원회가 생소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빈민사목위원회는 1987년 상계동 철거민들이 명동성당으로 들

어오면서 도시빈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교구의 의지를 담아 도시빈민사목위원회로 출발하였습니다. 당시 금호동, 무학동,

봉천동, 삼양동 철거민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해 지난 30년 동안 서울 주요 빈민촌에 선교본당과 평화의 집을 설립하였습니다. 저는

장위 1동 선교본당을 거쳐 지난해부터 위원장으로서 빈민들의 처지에 대해 정책, 교육 , 홍보 등 포괄적인 관리를 맡고 있고, 지역

으로 직접 나가 주민들도 만납니다. 근래에는 얼마 전 돈의동 쪽방촌 화재를 계기로 쪽방촌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 선교본당은 일반 본당과 어떻게 다르나요?

선교본당은 시설을 위한 건물을 짓거나 소유하지 않고 지역에서 집 한 채를 구해서 마루가 성당이 되는 곳입니다. 교우가 아니더라

도 누구나 찾아올 수 있고, 지역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다른 종교 단체나 복지센터와 연계해 함께 활동합니다. 선교본당과 붙어있

는 평화의 집은 IMF 때는 자활센터로서 기능하였다가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노인들만 남아 지역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홈리스추모제 등 노숙인들의 인권에도 앞장서시던데?

요즘은 거리에 홈리스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다 보다 드러나지 않게 숨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홈리스들이 잠을 잘 수 있는

다시서기센터가 세워지긴 했지만 서울역 광장처럼 공공의 장소들이 사유지가 되면서 대부분 쫓겨나게 된 것 입니다. 지방도 마찬가

지로 홈리스들이 자활하도록 돕기 보다는 으슥한 곳에 쉼터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안 보이게 하려고 하지요. 홈리스들도 내 이웃으

로,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에서도 다루어졌지만 故 박종철 열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

다. 이 시대에 있어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소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은 빨리 없어질수록 좋은 거겠죠. 과거에는 박종철 사건처럼 내용이 분명하고 증거가 있음에도 외압 때문에 이야기하

지 못했던 일들을 규명하는데 앞장섰다면 용산참사부터는 바뀌어 온 것 같습니다. 그냥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옆에 있는 것입니다.

철거민들이 나앉아 있으면 함께 나앉아 있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같이 슬퍼하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고요. 특별

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함게 미사 드리고 옆에 있어드리는 게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올 때 좋은 우산을 씌워주기

보다는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입니다.

-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저도 참례한 적이 있는데요. 거리에서 드리는 미사가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미사

란 무엇인가, 세상과 함께 하는 교회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가족들은 많은 위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즈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셔서 한국교회에 세월호를 비롯한 많은 메시지를 주셨는데, 잘 유지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양 냄새

가 나는 사제가 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항상 양의 곁을 머무는 목동의 몸에 양 냄새가 베이듯 사제 역시 늘 서민들의 삶에 다가가 그들의 냄새를 밭으며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죠. 우리가 잘 하고 있나요? 한국교회는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 가진 게 많다보니 가진 것을 유지하기에 급

급해지고, 교회가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은 소홀해지곤 합니다. 게다가 교인들을 대상으로만 활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역할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번 사목교서를 편찬하며 빈민사목위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지출하는 자선 지원금을 신자에게 국한하

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포함시켰스빈다. 교회는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며 지역 전체에 좋은 몫을 해야 합니다.

어떤 본당 신부들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터전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서 더 능력 있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로 지

역주민이 바뀌면 동네가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누더기 같은 수단을 입고 계셨던 교황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너무 부

자입니다.

- 라파엘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나요?

라파엘클리닉을 시작하셨던 고찬근 루카 신부님, 안규리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저도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동성고등학교 복도 진료 때에 주일미사 주례를 맡았습니다. 당시 본당신부가 아니라 대학생연합회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봉사하던

CaSA(서울대학교 의대·간호대 가톨릭동아리)와도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냈습니다. 라파엘클리닉을 올 때마다 길게 줄을 선 환우들을

마주치곤 했는데, 특히 아이를 데려오신 분들을 보면 머나먼 타국에서 아이까지 아프면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라파엘이 그 부모들에

게는 정말 천사와도 같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대학생연합회를 담당하시면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접하셨을 텐데, 요즘 젊은이들은 성당에 잘 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젊은 사

람들이 교회에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젊은 사람들을 중심에 두어야겠죠. 70년대에 교회의 주된 구성원이었던 그 사람 그대로 교회의 주인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그분들

의 헌신 덕분에 수많은 성당을 세웠고 교회가 세상 깊숙이 뻗어나갈 수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어른이 주인이 되고 청년에게서는 멀

어졌습니다. 청년들이 교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청년, 청소년들의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교회도 지원을 해야겠지요. 다행히 라파엘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가톨릭 동아리들은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이 정확하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청년들이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 '라파엘아카데미'를 새로운 목표로 세우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은퇴한 의사들의 사회적 참여 지원, 다음 세대가 되어줄 청년들

의 성장 등 다양한 대상을 아우를 것입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내용이 좋을까요?

은퇴한 의사들이 왕진가방을 들고 소외된 이웃을 직접 찾아간다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만난다는 것만

으로 많은 의지가 될 것이고, 그러한 힘이 사람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라파엘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강사가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를 이야기

해주고,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죠. 그야말로 사람을 만나는 아카데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가 단지 돈을 많이 벌

어가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여긴다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주 노

동자의 사회적 지위라든가 처우라든가 난민문제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앞으로 라파엘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라파엘은 어떻게 하면 함께 사는 세상이 될까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자체를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