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천사 이야기

[한성구 교수의 제멋대로 여행기] - 오소레잔(恐山, 공산)

작성자
raphael
작성일
2019-07-05 09:53
조회
3195

 우리는 죽으면 사후세계가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종교의 영향일까?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여기 있다……라고 보여주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의 북쪽 아오모리의 구석에 있는 오소레잔(恐山 공산: 무서운 산)이라는 곳이다. 왜 이름이 무서운 산, 두려운 산이라고 불릴까? 이 산이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영산 (靈山)을 셋 꼽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산이다. 나머지 둘은 고야산과 히에이산이다. 후지산은 여기 끼지 못한다..
  북해도가 일본 땅이 되기 전에는 아오모리가 일본의 북쪽 끝이었고 이 땅끝에 유황냄새가 가득한 황량한 곳을 보고 여기가 이승의 끝이고 이어서 저승의 입구가 여기서 시작된다고 느꼈단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너무나도 보고 싶을 때 오소레잔에 간다. 7월과 10월에는 여기 가면 눈 먼 무녀가 있는데 ‘우리 어머니 좀 불려주세요……’하면 그 영혼을 불러내서 무녀의 입을 통해 대화를 한단다.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고 조롱하지는 말자.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 맺힌 이야기들을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가 되는 아주 훌륭한 정신치료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맺힌 마음이 한결 풀린 상태로 이승으로 돌아 갈 수도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오소레잔 입구에 오면 탈의파(奪衣婆)와 현의옹(懸衣翁)이 나타난다. 죽은 자의 옷을 뺏는 할머니와 그 옷을 나무에 거는 영감인데 원래 중국의 옛이야기 주인공들이다. 죽은 자의 죄업이 많을수록 옷이 무거워서 축 늘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수의를 뻣뻣한 베옷을 입히는 지도 모르겠다. 예술적인 완성도는 좀 아쉽지만 이제 오소레잔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 바로 옆에는 이승과 저승을 경계짓는 삼도천이 있다. 서양에도 저승을 건너러면 스틱스강을 건너는데 이는 동서고금이 똑같다.


탈의파와 현의옹. 예술적인 완성도가 좀 떨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아주 훌륭한 저승의 입구 노릇을 한다.


삼도천을 건너는 다리.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삼도천을 건너면 절이 나타난다. 그 절의 바로 옆에는 지장보살을 여섯 분이나 모셨다 지장보살이 누구인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몸소 지옥에 들어가서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을 미루고 있는 보살이 아닌가? 이제 여행자는 저승, 즉 지옥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지장보살들이 있는 곳의 바로 옆이 산문이다. 산문에서 빼꼼히 들여다보니 대웅전 격인 지장전이 보이고 길 양 옆에는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유황천이 있다. 아주 실감나는 저승의 입구이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 보자.


절의 입구에는 지장보살이 여섯 분이나 모셨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려는 보살인데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을 미루고 있는 보살.


 오소레잔의 절인 보리사의 산문에서 본 지장전. 길 양 옆에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유황천이 있다.



 대웅전 격인 지장전을 보고 왼 쪽으로 오르면 지옥이 펼쳐진다. 아주 황량하고 수증기도 좀 있고 유황 냄새도 나는 지옥의 모습이다. 구름까지 끼인 날씨이면 더더욱 지옥의 느낌이 든다. 여기를 거닐다 보면 꼭 ‘신과 함께’를 보는 느낌이 든다. 혹시 ‘신과 함께‘의 작가가 여기를 와 본 것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주 실감나는 지옥 영화의 세트장 같아서 이 절은 시각적인 이미지로 아주 성공한 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량한 지옥. 이 지옥을 한 바퀴 도는데 40분쯤 걸린다.


  오소레잔에 가는 사람들의 필수품은 짚신과 수건 그리고 바람개비이다. 짚신은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수건은 지장보살께 두르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람개비는 살아있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바람개비에 실어서 저승으로 보내려는 이유이지만 모든 것이 무채색인 저승에서는 유일하게 강렬한 색깔을 만드는 설치미술이기도 하다. 다 못한 이야기를 바람개비에 실어서 보낸다는 발상이 참 소박하면서도 절절하다.
왜 한국은 기독교가 짧은 시간에 많은 신도를 확보하게 되었을까? 다른 말로 한국의 불교는 왜 많은 신도를 잃었을까? 반면에 일본은 불교와 신도가 끄떡없이 버티고 있고 기독교는 그다지 왕성하지 못할까? 이 오래 된 궁금점의 한 조각 이유를 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절을 보면 일본 불교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과 삶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니…… 인간은 시각적인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오죽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저승 방문의 필수품인 짚신, 수건 그리고 바람개비



지옥을 헤매는 시간은 40분 정도 걸린다. 그 사이에는 지장보살도 여러 분을 만나는데 가장 높은 곳에 큰 지장보살의 상이 서있다. 여행자들이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도 보인다. 유황천도 또 보고 연고 없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아기들의 영혼도 보고 큰 재해로 한꺼번에 죽은 영혼들도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내리막 길에 접어들자 갑자기 눈부시게 아름다운 옥 빛 호수가 펼쳐진다. 천상을 깨우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호수가 바로 극락을 상징하는 곳이다. 호숫가에는 흰 백사장이 펼쳐있는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 백사장에 주저앉는다. 꼭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호수를 사진에 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더러는 눈물을 흘리는 여행자도 보인다. 하얀 백사장에도 어김없이 강렬한 색의 바람개비는 돌고 있다. 지옥투어는 끝난 것이다. 그런데 지옥이 진짜 있기는 할까?


지옥의 가장 높은 곳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지옥을 헤매다가 결국은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게 된다. 이 호수가 극락을 상징한다.
여행자들은 극락 앞에 주저앉아 각자의 상념에 빠진다. 눈물을 흘리는 여행자도 꽤 있다.